모자들의 교향곡 55부-1

야설

모자들의 교향곡 55부-1

타요아빠 0 279 0 0

늦가을의 밤은 제법 쌀쌀했다. 선생님은 밖에 나와있은지가 오래되었는지 코와 볼이 빨개져 있었다.
"애들은 잘 있니?"
"네"
"노느라고 잠도 안자지?"
"....."
"괜찮아. 수학여행오면 다 그렇지. 그게 추억이 되는건데. 나도 학창시절에 그랬어"
그녀가 미소를 띄우며 말하자 선규도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별로 두껍게 보이지않는 코트와 바지를 입고있는 그녀는 다시 표정이 어두워지며 앞을 바라보았다.
"춥지 않으세요?"
"아니. 난 괜찮아. 넌 춥니?"
"저도 괜찮아요"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선생님은 무거워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애들아빠에게 서류를 보냈어"
"....."
무슨 서류인지를 아는 선규는 아무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렇게 되리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조그만 충격이 들었다.
"뭐라 위로의 말씀을 해들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선생님은 허탈한 웃음를 지었다.
"마음은 그렇게 갖고 있었어도 일단 하고 나니까 이상하더라"
"혁재아버지는 뭐라 그러셨어요?"
"몰라. 변호사를 선임했으니까 나는 더이상 그사람과 얘기할 필요가 없어"
"애들은 이일을 아나요?"
"아직. 그게 제일 큰 문제지"
심란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측은함이 들은 선규는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앉아 차가운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아직은 어리지만 애들도 크면 선생님을 이해해 줄거에요. 심성이 착하잖아요"
"그래주면 다행이지"
"선생님도 힘을 내시고요. 이건 새로운 출발이잖아요. 반드시 행복해지실 거에요"
그말을 들은 선생님은 그를 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일에 네가 옆에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별말씀을 다하세요. 도움을 드린것도 없는데요"
그말을 하니 문득 선생님과 섹스를 했던게 생각나서 선규는 은연중에 불편함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신경이 안쓰이는지 계속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순간에 기타가 있으면 좋은데"
"선생님이 원하시걸 알았다면 집에서 가져올걸 그랬나봐요"
그가 겸연쩍게 웃자 선생님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에게 음악을 들려주는게 좋니?"
"네. 누가 제기타소리를 열심히 들어주면 고맙고 즐거워요"
그러자 그녀는 그의 말을 수궁한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얼마동안 말없이 있다가 선규의 손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추운데 그만 들어가서 자. 새벽에 해뜨는걸 보러가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야 되잖아"
"선생님은요?"
"난 잠이 오질 않아서 잠시 동네주위를 산책하다 들어갈려고. 마음도 그렇고해서"
"그럼 제가 옆에서 같이 산책해 드릴게요"
"안돼. 밤에 학생들은 숙소밖으로 나가면 안된다는걸 잘 알잖아. 내걱정 하지말고 어서 들어가"
그러나 선규는 근심이 담긴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밤에 여자이신 선생님이 혼자 다니시는걸 알고 어떻게 그냥 들어가겠어요? 어차피 저도 애들때문에 잠을 못자요"
"그래도....."
"선생님이 옆에 계신데 제가 나쁜짓을 하겠어요? 저도 방안에서만 있을려니까 갑갑해서 그래요"
애원하는 선규를 보던 그녀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자. 학교에서 알게되면 네가 내보디가드를 해줬다고 하면 되지"
얼굴이 환해진 선규는 선생님을 데리고 뒷담에 붙어있는 후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포장이 되어있는 조그만 길은 가로등이 많지가 않아서 상당히 어두웠다. 낮에 버스에서 보았던 건물들도 분간하기가 몹시 어려울 정도였다. 가게들도 문을 닫고있어서 거의 모든 건물들은 조명이 꺼져 있었다. 이곳은 농작지로 거의가 논과 밭이었고 주택들은 별로 없었다. 어둡고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길에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들려서 약간의 공포감이 나기도 하였다.
"밤이라서 그런지 길이 무섭네"
"제가 따라나오기를 잘했죠?"
"그래"
날씨는 추웠지만 공기가 맑아서 한참을 걷다보니 머리와 가슴속이 상쾌해 지는게 느껴졌다.
"공기도 좋고 서울과는 다르네요"
"경주는 처음이니?"
"옛날에 엄마와 와본 기억은 있는데 아주 어렸을때라 잘 기억이 안나요"
"나도 애들을 데리고 와본적은 있었어"
잠시 옛생각이 나는지 선생님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면서 얼마를 더 걸어가니 그나마 어렴풋히 길을 밝혀주던 가로등의 수가 적어지고 길주변에는 건물도 잘 눈에 띄어지지 않게 되었다.
"어두워서 볼것도 없는데 그만 돌아가자"
선생님과 함께 몸을 돌릴려고 하는데 갑자기 숙소가는 쪽의 반대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순간 그녀는 선규를 잡고 급히 길주변으로 내려갔다. 마침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있는 건물 하나를 발견한 선생님은 조용히 하라고 그의 입에 손가락을 대며 신호를 준다음 그의 손을 잡고 소리없이 건물옆으로 갔다. 건물벽에 몸을 웅크리고 길가를 지켜보자 두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중 한사람은 선규의 반을 가르치는 수학선생님이었다. 얼마후 그들의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되자 선생님은 안도의 한숨을 깊히 쉬었다.
"우리학교 선생님들이신데 왜 그러세요? 잘못하신것도 없잖아요"
"으..응, 그냥....."
"저때문에 그러시는거세요?"
"....."
그녀가 대답을 못하자 선규는 그녀의 심정을 어렴풋히 짐작할것 같았다. 선생님은 그와 성관계를 맺은것에 대해서 겉으로는 태연한척을 하고있었지만 속으로는 동료선생님들에게 그와 단들이 있는것을 보여주는것조차 불편해 할만큼 신경을 쓰고있음에 틀림없었다.
[혹시라도 그런일이 누구에게 알려지면 큰일나는건데 당연히 그런마음이 드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씁쓸한 심정이 들었다. 그와 관계했던 여자들은 엄마, 선생님, 그리고 마담뿐이라서 남들처럼 누구에게 떳떳히 말하거나 보여줄 입장이 아니어서였다.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다가 문득 열려진 창문으로 건물안을 보게 되었다. 건물이나 그주위에는 아무런 전등불이 없었으나 달빛이 비쳐주고 있어서 그안을 어느정도 분간할수가 있었다. 건물안에 짚과 농기구들이 있는걸보니 농사할때 쓰는 헛간같았다. 호기심이 든 선규는 앞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았다. 뜻밖에도 문은 잠겨있지 않아서 안을 들어가보니 농사철이 끝난지가 꽤 되어서 그런지 먼지들이 쌓여있었다. 뒤를 따라 들어온 선생님도 건물안을 두리번 거렸다.
"무슨 창고인가 보다. 그런데 문을 안잠근걸보니 여기는 도둑도 없나?"
"주위에 아무집도 없어서 그런가봐요. 아마 저희같은 사람들보고 쉬어가라고 문을 열어놨나보죠"
그와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깃든 얼굴로 살펴보는 그녀의 입에서는 숨을 쉴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다시 열려진 문틈으로 길을 보던 선규는 무덤덤한 어조로 물었다.
"아까 그선생님들은 이밤에 어디갔다 오시는 길일까요?"
"아마 술을 사고 오는 길일거야. 저쪽에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
선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길가를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선규야"
"네?"
"너,..... 그때의 일을 아직도 생각하니?"
그러자 선규는 고개를 돌려 추워서 그러는건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런지 알수가 없지만 얼굴에 홍조를 띄고있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녀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그이후로 너를 볼때마다 미안했었어. 그때 네가 말을 그렇게 했었지만 혹시라도 네가슴에 상처가 들었을까해서....."
"저는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러자 그녀는 등을 돌리고 건물안쪽으로 좀더 들어가서 얼마동안 말이 없다가 목이 메인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자꾸 네생각이 나. 그전에도 네생각이 나긴 했었는데 요즘은 더 그래. 힘들고 외롭다보니 그런가봐"
깜짝 놀란 선규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저번에 마담이 했던 말과 같은 말씀을 하시네. 그나저나 내앞에서 저런 말씀을 하시는걸보니 정말로 힘드신가 보구나]
"난 네선생님이 될 자격이 없나보다"
그말을 듣고 선규는 다시 선생님이 처량하고 애처롭게 느껴져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돌아세우고 차가운 볼을 두손으로 감쌌다.
"그런 말씀하시지 마세요. 저한테는 영원히 고마운 스승님이세요"
그말에 그녀는 눈물을 약간 글썽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네가 이렇게 위로를 해주는데 나는 선생님이 되서 그저 받기만 하는구나"
그녀의 울먹이는 말에 선규는 저도모르게 머리를 숙여 키스를 했다. 현재의 감정에 이끌려 함께 키스하던 선생님은 별안간 그의 얼굴을 잡으며 입을 떼었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면서 두려움이 든 얼굴로 그의 어깨너머로 문쪽을 살피자 선규는 말없이 문을 닫고 돌아왔다. 그러자 선생님은 긴장이 되어 그와 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서..선규야"
"....."
선규도 샹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걸 깨닫고 있었지만 자꾸 그의 생각이 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옆에서 조금이라도 선생님에게 위안을 주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마담하고는 달리 그녀가 엄마처럼 그를 진심으로 필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자들은 몰라도 왠지 그녀에게만은 엄마를 배신하면서까지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냥 이대로 돌아가고 싶으시면 선생님뜻대로 하세요. 저는 다만 조금이라도 선생님이 힘들어 하시는걸 덜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선규가 잔잔하게 미소지으며 말하자 혼란스러움과 망설임이 들어있던 그녀의 눈은 간절함으로 바뀌면서 그의 가슴에 기댔다.
"우리 다시는 이러지 않기로 약속했었잖아"
"......"
그말을 들으며 살며시 선생님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던 선규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입을 깊숙히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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